1987년 체제의 황혼, 그리고 4년 연임제라는 새로운 새벽: 우리는 준비되었는가?

1987년 체제 헌법책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개헌의 상징적 이미지와 국회의사당 배경

1987년 체제 헌법책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개헌의 상징적 이미지와 국회의사당 배경

옷장 깊숙한 곳에 쳐박혀 있던 오래된 정장을 꺼내 입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1987년,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던 거리에서 우리가 쟁취했던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라는 옷이 딱 그렇습니다. 당시엔 군사 독재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급하게 맞춰 입은 방탄조끼 같았지만,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옷은 우리의 몸집에 비해 턱없이 작고 불편해졌습니다. 바야흐로 2026년, 대한민국 정치권이 다시 한번 재봉틀 앞에 앉았습니다. 주제는 바로 '대통령 4년 연임제'입니다. 지겨운 레퍼토리라고요? 하지만 이번엔 공기의 무게가 다릅니다.

'5년 단임제'라는 유효기간 지난 보험

솔직히 말해봅시다. 우리는 대통령을 뽑아놓고도 3년 차가 지나면 시계를 봅니다. '이제 내려올 때가 됐는데 힘이 빠졌군.' 소위 말하는 레임덕(Lame Duck)입니다. 5년 단임제 하에서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퇴임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장기적인 국가 비전이나 정책의 연속성은 '다음 정권'이라는 미지수 앞에서는 사치였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의 정책이 휴지 조각이 되고, 공무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눈치만 보는 상황, 지겹지 않으십니까?

현재 정치권에서 불이 붙은 4년 연임제 논의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죠. 잘하면 4년 더 기회를 주고, 못하면 4년 만에 심판하여 집로 돌려보내겠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단순한 임기 연장이 아니라, 유권자인 우리에게 '중간 평가'라는 강력한 무기를 쥐여주는 셈입니다. 5년 동안 묵묵히 참고 견디는 인내의 민주주의에서, 실시간으로 성적표를 매기는 효능감 있는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5년 단임제와 4년 연임제의 무게를 비교하는 저울과 이를 지켜보는 대한민국 국민들

5년 단임제와 4년 연임제의 무게를 비교하는 저울과 이를 지켜보는 대한민국 국민들

제왕적 대통령의 부활인가, 책임 정치의 시작인가

물론, 반론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안 그래도 대통령 권한이 막강한 나라에서 임기까지 늘려주자고?"라는 우려,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 현대사에 새겨진 독재의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깊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논의되는 4년 연임제 개헌안은 단순히 기간만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국무총리 선출권을 국회로 일부 이양하거나,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견제 장치들이 패키지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즉, 권력의 '기간'은 유연하게 하되, 권력의 '밀도'는 낮추겠다는 것이죠.

미국의 경우를 볼까요? 오바마나 클린턴 같은 대통령들이 8년의 임기 동안 굵직한 정책들을 완수할 수 있었던 건, 재선을 의식한 치열한 국정 운영과 그에 따른 국민의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요? 5년마다 리셋 버튼을 누르느라 국가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봐야 합니다. 2026년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닙니다. 복잡다단한 외교 안보 문제와 저출산, 기후 위기 같은 거대한 파도를 넘기 위해서는 5년짜리 선장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키를 더 잡을 수 있는 숙련된 선장이 필요합니다.

개헌, 결국 그 칼자루는 누가 쥐나

정치권이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결국 이 논의의 마침표를 찍는 건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손끝입니다. 개헌은 국민투표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을 위해 개헌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골격이 바뀔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인지 꿰뚫어 보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논의가 단순히 '다음 대통령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셈법으로 축소된다면, 이번 개헌 열차 역시 탈선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논의를 '우리는 어떤 방식의 통치를 원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한다면, 1987년 체제를 넘어선 2026년 체제, 즉 '제7공화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입고 있는 5년 단임제라는 옷, 여전히 편안하십니까? 아니면 이제는 수선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십니까? 판단은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궁금해할 만한 질문 (FAQ)

Q: 4년 연임제와 4년 중임제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A: 연임제는 대통령 임기 중에 1회에 한해 '연속해서' 다시 출마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반면 중임제는 횟수에 제한을 두되, 연속하지 않아도(차차기 등) 다시 출마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현재 논의의 핵심은 연속성을 보장하는 '연임제'에 가깝습니다.

Q: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언제부터 적용되나요?

A: 통상적으로 현직 대통령에게는 개헌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2026년이나 2027년에 개헌이 확정된다면, 차기 대통령 선거부터 새로운 제도가 적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Q: 4년 연임제가 되면 독재의 위험은 없나요?

A: 과거 장기 집권의 트라우마로 인해 그런 우려가 있지만, 현재의 시민 의식과 제도적 견제 장치(탄핵, 사법부 독립 등)를 고려할 때 과거와 같은 독재가 발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오히려 4년 후 선거를 통해 심판받아야 하므로 민심에 더 민감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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