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가 다시 꺼낸 형제복지원 사건, 박인근 일가의 현재

'꼬꼬무'가 다시 꺼낸 형제복지원 사건, 박인근 일가의 현재

'꼬꼬무'로 재조명된 형제복지원 사건, 박인근 일가의 충격적 현재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인권 유린이자,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사건'을 알고 계신가요?

안녕하세요. 며칠 전 늦은 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보다가 형제복지원 사건이 다시 나오는 걸 보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께 들었던 끔찍한 이야기가 실제였다는 걸, 그리고 그 가해자들이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분노를 자아냈어요.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그 당시의 진실부터 현재 박인근 일가의 놀라운 현실까지 낱낱이 파헤쳐보려고 합니다.

형제복지원, 거대한 인권 지옥의 시작

부산 남구 감만동. 겉보기엔 평범한 지역이지만, 그곳에 있던 형제복지원은 그야말로 인간 지옥이었습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약 4천 명 이상이 강제로 수용되었고, 그중 513명이 사망했다고 공식 집계되었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숫자가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합니다. 단지 거리에서 "지저분해 보였다"는 이유로 납치되거나, 가족의 항의 한마디에 함께 끌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까요.

공권력까지 가담한 납치와 감금

단순한 민간 복지시설이었을까요? 아니요. 형제복지원은 당시 부산시와 경찰,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운영되었습니다. 그들은 명분을 "도시 정비"라고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를 '깨끗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가혹한 인권 탄압이었습니다.

가담 주체 행위
부산시 및 시 공무원예산 지원 및 행정 비호
경찰시민 무차별 납치 및 감금
정부사회정화 명목으로 정당화

내부 고발과 은폐된 진실

진실은 의외의 곳에서 드러났습니다. 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 소속 김용원 검사가 형제복지원의 실체를 우연히 목격한 것이죠. 이후 그는 목숨을 건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정부와 검찰은 이를 ‘사회 정화’라며 정당화했고, 박인근은 고작 횡령과 건축법 위반 혐의로 2년 6개월 형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1. 김용원 검사의 목격과 수사 착수
  2. 형제복지원 내부자들의 증언
  3. 검찰 수사 결과의 왜곡
  4. 정권 차원의 사건 축소 및 무죄 판결

박인근 일가, 수천억 원의 재산 실태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박인근은 이 끔찍한 시설을 운영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그는 복지사업 명목으로 정부 보조금과 종교계, 지자체 후원을 받아 10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모았다고 알려졌습니다. 형제복지원 해산 이후에도 그 재산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름을 바꾸며 다른 시설로 유지되고 있었죠.

재산 항목 세부 내용
호주 골프장수백억 원 규모 스포츠 시설
부산 부동산헬스센터, 해수온천 등
사회복지시설‘실로암의 집’, ‘욥의 마을’, ‘느헤미야’ 등
기타온천, 임대업, 무허가 종교시설

여전히 건재한 박씨 일가의 복지 재벌

박인근 사망 후에도 그 자리를 셋째 아들 박천광이 물려받았고, 이후에도 사위들과 기타 가족들이 복지사업을 빙자한 각종 운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비록 일부는 처벌을 받았지만, 재산 대부분은 여전히 회수되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 박천광: ‘실로암의 집’ 운영, 횡령 혐의 유죄
  • 사위들: 요양병원, 정신과 병원 운영
  • 기타 가족: 헬스센터, 온천, 부동산 임대

피해자들의 싸움과 특별법 제정 요구

2012년 피해 생존자 한종선 씨의 1인 시위를 시작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현재도 피해자들은 진상규명과 국가의 사과,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1987년 당시 축소되었던 수사와 외압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특별법을 제정해 피해 회복을 위한 절차를 조속히 시행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형제복지원은 어떤 시설이었나요?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된 부랑인 수용소로, 강제 감금과 폭력이 일상이었습니다.

왜 사건은 당시 묻혔나요?
정권의 외압과 언론 통제, 검찰 축소 수사 때문이었습니다.

박인근은 왜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았나요?
살인과 감금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횡령과 건축법 위반만 적용되었습니다.

현재 박씨 일가는 무엇을 하나요?
복지시설과 병원, 온천 등 여전히 여러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왜 특별법이 필요한가요?
피해자 명예 회복과 보상을 위한 법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무관심은 또 다른 비극을 낳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지키는 책임이 필요합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단지 과거의 비극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유사한 인권 침해는 여전히 일어날 수 있고, 우리가 막지 않는다면 또 다른 ‘형제복지원’은 언제든 생겨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마음속에 무언가 울림이 있었다면,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 피해자들에게는 아직도 우리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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